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3)
당시 목포교회에는 문준경과 같은 사람이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학섭이라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도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에게 버림받아 생을 끊으려 했다. 흰 소복을 입고 물에 뛰어들려고 할 때, 마침 그 곳에 있었던 장석초 전도사를 만나 생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 장 전도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전도인의 사명을 헌신적으로 감당하게 되었다. 김학섭은 나중에 전도사가 되어서 장 목사 사역지였던 함열교회에서 계속 사역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꾸밈이 없고 사명감이 철저해서 교회에서 받은 적은 사례비를 모아 교회 건축 후 강대상 헌금을 하였다. 그녀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늘 사랑으로 성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문준경과 김학섭은 이렇게 목포교회 장석초 전도사의 도움으로 신앙의 기초를 쌓아갈 수 있었다. 그의 단호하고 타협 없는 믿음은 이 두 사람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사역의 꽃을 피우게 하였다. 세상에서 희망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이 두 여인은 장 목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사명을 깨닫게 되었고, 버림받은 몸이 아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새로운 인생, 새로운 소망과 목적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복음의 능력과 비밀을 체험한 문준경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한 부모님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 빨리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암태도 수곡리에 있는 부모님께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딸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먼 발치에서 지켜봐야 했던 친정아버지는 문준경을 보자 너무 기뻐하였다. 문준경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문준경은 부모와 자식 간의 정담을 주고 받으면서 드디어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아버지에게 했다. 문준경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소박맞고 슬픔과 좌절에서 헤매던 중 목포에서 복음을 접하여 지금 얼마나 복되고 기쁜 생활을 하는지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예수님 믿고 천당가야 한다고 전도하였다. 이 말은 들은 아버지는 서양 귀신에 미쳤다고 딸을 다그쳤다. 아버지는 계속 전도하는 문준경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서 마당 우물가에 있는 썩은 물을 퍼서 준경의 머리 위로 끼얹어 버렸다. 문준경을 친정아버지에게 전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훗날 친정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1929년이 되어 문준경의 삶에도 변화가 왔다. 목포교회에서 시무하던 장석초 전도사는 압해도교회로 전근하고, 당시 성결교회에서 가는 곳마다 부흥을 일으켰던 김응조 목사가 목포교회의 주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김응조 목사는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유달산에서 기도하면서 신유를 체험하고 자신이 체험한 이 은혜를 신자들에게 간증하였다. 목포교회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말씀을 통해 체험했고 문준경 집사도 김응조 목사의 이러한 체험적 신앙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김응조 목사는 병에서 깨끗함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 성결교 본부에서 1931년 3월 20일 그를 다시 감리목사로 임명함으로 목포교회를 사임하고 대전지방 감리사로 가게 되었다.
문준경 집사의 전도열은 점점 왕성해가고 있었다. 장석초 전도사의 성경 강해, 김응조 목사의 체험적인 신앙의 영향을 받아 말씀과 능력이 그녀의 신앙생활의 두 바퀴가 되었다. 이런 훈련과 연단 가운데 1931년 3월에 목포교회에 새로운 목회자로 이성봉 전도사가 부임하였다.